말씀을 나누기 전에 제가 누군지 검증도 안하시고 이렇게 기회를 주신 김현호 신부님과 동두천나눔교회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그리고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환대를 여기 동두천나눔교회에서 느낄 수 있어 참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동두천나눔교회는 제가 처음으로 접한 대한성공회 교회이며, 처음으로 설교하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처음은 특별하지요?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두 동네 모두 유대인들이 그렇게 반기는 지역이 아닙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 그룹 사마리아인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다른 민족과 결혼하지 말라는 율법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유대인이 바라보는 사마리아인은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에서 벗어난 민족이었습니다. 갈릴래아는 로마 제국의 수탈로 빈곤한 지역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낙후한 지역이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이방인들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두 동네는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이 볼 때 소위 별 볼일 없는 동네였습니다. 이 별 볼일 없는 지역 사이에는 이들이 볼 때 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나병환자였습니다. 오늘 10명의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오늘 열왕기하에서도 이방인 출신 나병환자 나아만 장군이 등장합니다. 나병환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입니다. 나병은 일종의 피부병으로 한센병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나병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됐습니다. 지금 역시 소록도의 경우만 봐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한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유대인이 업신여기는 두 동네조차 살지 못하고 그곳에서 쫒겨나 그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들 자신이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루가 5장에서 나병환자를 고치셨는데 아마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자비를 구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아주 쿨하시게 이들에게 한마디 하십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나병환자가 치유됐는지는 사제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에 사제에게 가서 몸이 다 낫다는 걸 보여주라는 뜻이죠.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사제에게 가는 도중에 이들의 몸의 깨끗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이걸 기적이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 더 놀라운 기적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나병환자들의 출신성분을 보지 않으시고 치유를 베푸셨고 치유에 대한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말그대로 공짜로 치유의 은총을 베푸신 사실입니다. 무조건적, 무이자, 무한대 은총이란 말입니다. 나병환자 10명이 예수님께 한 말은 “자비를 베푸소서”였고 예수님께서는 아무 조건없이 치유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유대인이 앝보고 사람 취급 안하는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람들조차 업신여기는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언제나 있음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겁니다. 오직 이 은총이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던 나병환자를 예수님의 발 밑으로 다가서게 합니다. 오직 어떤 조건없이 요구사항 없이 주어진 은총만이 나병환자를, 우리를 하느님께 다가설 수 있게 합니다. 이 은총이 바로 복음입니다. 좋은 소식, Good News는 말그대로 좋아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짓던 하느님의 은총이 끊기는 법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경계선이 없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마음이 자유로워지지 않으세요? 반면, 이 은총이 우리가 불의하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단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아주 흉악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에게도 내립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아마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의 시각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할 죄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다고 선포하는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불편했을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편하게 느끼던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좌지우지할 힘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은총이 닫지 않을 듯한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걷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십니다. 이 사이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은총이 닫지 않는 곳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저주받고 죽어가고 있다고 믿는 사이의 자리에 하느님의 은총은 끊임없이 언제나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저는 동두천이 사마리이와 갈릴래아 사이와 같은 장소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북부 전방에 위치해 북한에서 근접하고 미군 기지가 있고 서울 도심으로부터 소외된 장소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동두천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 봤는데요, 위키피디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동두천시(東豆川市)는...시청을 기준으로 서울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47 km 거리에 있다. 대한민국 북부 전방에 위치하여 국방 안보상 중요한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이 주둔해 왔으며 2004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할 예정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주한미군의 주둔 등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 온 도시이다. 동두천시 총 면적의 약 43퍼센트가 주민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미군에 공여되고 지금껏 유지되어 오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많이 보았다. 동두천의 경제구조는 어쩔 수 없이 미군에 의존해 왔으므로 기형적이었고,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한 주한미군 주둔지를 피해 도심이 시의 남단에 형성되는가 하면, 미군 범죄와 미군 성매매 등으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의 축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경험하였다.” 위키피디아의 간략한 설명을 보면서, 동두천이 한반도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장소이며, 여길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제 처가가 여기에 있어서 저는 동두천에 처음 와봤습니다. 양키시장이라는 곳도 구경했고, 구경하면서 미국에 살면서 심심찮게 마주친 미군과 결혼한 분들 생각도 났습니다. 한국 사회가, 또 이민 사회가 그 분들을 얼마나 소외시켰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두천 여기저기를 둘러본 그날 저녁, 어른들께서 술자리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손님 대접할 때는 떡갈비하는 식당으로 가는데, 지역 음식이란 게 있어도 그걸로 손님 대접하기는 좀 그렇다’고 운을 띄우셨습니다. 그러면서, 지역 음식이 뭐냐고 물으니, “부대고기”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부대에서 나오는 고기. 부대에서 쓰고 남은 고기라는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른들 목소리 속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진 건 제 괜한 기우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이의 장소인 동두천이 비록 제 고향은 아니지만 제게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동두천을 바라볼 때 마치 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16년을 살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 19년을 살았습니다. 모국은 한국이고 현재 국적은 미국입니다. 제 35년 삶 역시 한국과 미국 사이의 자리에서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이의 장소 동두천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제 정체성의 한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이의 장소 동두천에서 동두천나눔교회의 존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합니다. “사이의 장소”에서 우리는 영원한 은총의 상징이자 현존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사이의 장소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됩니다. 동두천나눔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은총의 몸으로서 “사이”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하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 올 사람 열명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와 찬양으로 돌아올 사람이 몇명이나 될 지 우리는 모릅니다. 동두천나눔교회를 통해 드러날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할 사람이 몇명이 될 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저 바울로 성인의 고백처럼 “끝까지 참고 견디고” “모든 것을 참으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막지 않으면 됩니다. 출신, 신분, 재산, 사람을 가리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이 동두천나눔교회를 통해 사이의 장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흐르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
Paul"...life up your love to that cloud [of unknowing]...let God draw your love up to that cloud...through the help of his grace, to forget every other thing." Archives
Januar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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