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성령강림주일은 오순절 Pentecost, “부활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순절 외에 또다른 용어가 있는데요, 바로 Whitsunday입니다. Whit Sunday는 성공회에서 유일하게 쓰는 용어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Wheat, 밀이 아니라 Whit인데요, 이건 white이 줄여져서 whit이 됐습니다. Whitsunday는 “하얀 주일”이라는 뜻입니다. 성령강림주일에 많은 사람들이 하얀 의복을 입고 세례를 받았기에 하얀 주일이라고 불려졌습니다.
용어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원래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은 유대교 전통인 칠칠절에서 유래됐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을 보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 신도들은 유대교 전통인 칠칠절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칠칠절은 유월절 후 50일을 가리킵니다. 이 50일째 되는 날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토라, 즉 모세5경, 율법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법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진 날입니다. 이 칠칠절, 오순절을 기리기 위해 신도들이 모였습니다. 특별히 성령을 기다리기 위해 모인 게 아니라 자신들의 유대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모인 셈이죠. 그런데 이 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고 승천한 이후 맞이한 칠칠절은 달랐습니다. 이 날 하느님의 법이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영, 성령께서 이 신도들에게 임합니다. 바로 이 사건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2:2-4) 초자연적인 현상과 함께 여기 모인 신자들이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랍니다. (저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 성서 본문을 읽고 성령의 힘으로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게 기도했는데 아직도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이 트였다는 뜻은 이제껏 하느님의 가르침인 율법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졌는데, 이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영, 성령의 가르침이 모든 민족에게 주어졌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오순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가르침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성령강림주일에 대한 짧게 요약한 뒷배경입니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세상에 주어진 성령의 영, 이 성령을 여러분은 받으셨습니까? 복음서에서 부활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을 내쉬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이 성령을 여러분께서는 받으셨습니까? 이 성령을 받았냐 안받았냐는 주로 오순절 계통 전통의 교회 부흥회에서 많이 회자됩니다. 혹시 개신교 전통의 부흥회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가 고등학교 때 다니던 교회에서 능력이 신통한 목사님을 초청해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주면 사람들이 뒤로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성령을 받으면 뒤로 넘어간다고 (나자빠진다고) 하길래 저도 안수기도 줄에 섰지요. 제 차례가 드디어 왔습니다. 목사님이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시는데 아무 일이 안일어나는 겁니다. 제가 머리를 밀고 버틴 것도 아닌데 말이죠. 목사님께서 은근히 미시길래 성령에 의지해 누군가 날 잡아주겠지 하며 뒤로 자발적으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이 날 성령을 받았을까요? 엄밀히 따지면 제가 스스로 넘어갔는데 말입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여쭤 볼게요.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네! 여러분 모두 성령을 이미 받으셨습니다! 언제 받으셨나요? 여러분이 세례 성사를 받을 때 성령께서 임재하셨습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성령의 임재하심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뒤로 넘어졌든 앞으로 넘어졌든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에 함께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성령은 세례받은 이들에게만 교회에만 존재하시는 걸까요? 아닙니다. 성령은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십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선하고 정의로운 일은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대신 우리가 세례를 받아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심은 우리의 온 존재가 성령의 움직임을 의식할 수는 능력을 얻게 됐다는 뜻입니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게 만듭니다. 주로 성령에 관해 이야기할 때 추상화시키거나 기적화시키거나 미신화시키는 게 예삿일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제한시킬 수 없습니다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기적에만 연결시키는 또한 성령을 제한시키는 행위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 일상에 항상 살아계십니다. 작은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의 마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향할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때, 모두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감사성찬례를 드리려 우리를 여기에 모이게 한 분은 성령이십니다. 타인을 향해 미소 짓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겁니다. 새벽녘 문득 아무 이유없이 잠에서 깨어나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 성령의 움직임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하는 모든 선한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건가’라고 볼 수 있는데 맞습니다. 성령께서 억지로 우리를 시키는 게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을 우리가 자진해서 선택하고 행하는 것,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뒤로 하고 성령의 간구하심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궁극적으로 이끄시는 길의 도착점은 단순히 선하게 사는 삶에 있지 않습니다. 도덕군자가 되라는 게 성령의 뜻이라기 보단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힘을 북돋아 주시는 데 있습니다. 눈을 한번 감아보시겠습니까? 복음서에서 부활한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시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 여러분이 함께 서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깊게 숨을 내쉬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세례 성사를 받은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숨을 받은 이들입니다. 지금 쉬는 내 호흡, 숨은 바로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숨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내쉬는 숨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육체가 행하는 본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내쉬는 숨은 성령의 숨결입니다. 들숨과 날숨, 성령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시고 나가시고, 내게 예수님의 숨으로 부활한 삶을 살게끔 하는 동력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부활한 예수님의 숨결에 따라 살아갑니다. 삶이 걍팍해져서 내 이웃을 향한 마음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때론 가슴 아픈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울적해지거나 아무 의욕이 없어지고 의기소침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화가 잔뜩 날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살아계시는 성령을 기억합시다. 숨을 깊게 내쉬며 부활한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던 그 모습을 기억합시다. 단순히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정돈하자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숨으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는 말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심호흡은 심폐 운동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움직임에 예민하고 분별하는 영성 훈련이 있을 때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깊어지고 우리에게 각자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 성소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개성에 맞게 주어진 성소를 식별하고 살아낼 때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즉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은 우리의 마음이 오순절에 모였던 신도들의 마음처럼 성령으로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매순간 숨쉬는 호흡이 예수님께서 주신 호흡임을 기억하며 매일 성령의 속삭임에 귀기울이는 우리가 되길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
Paul"...life up your love to that cloud [of unknowing]...let God draw your love up to that cloud...through the help of his grace, to forget every other thing." Archives
Januar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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