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of Jesus’s statements about himself are astonishing in the gospel of St John. There are about eight statements in which he describes himself as simply “I am,” “the bread of life,” “the light of the world,” “the gate for the sheep,” “the good shepherd,”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the true vine,” and lastly,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The last statement is what we hear this morning. This is an extremely challenging statement to swallow. Imagine someone saying such a self-confident, if not self-aggrandizing, statement and expect you to believe it to be true. You might think that person is way too narcissistic and egocentric. Who says that nowadays? (though I can certainly think of some who would say that in our political scene.)
St John’s depiction of Jesus that starts with the phrase “I am” is theologically rooted in the Jewish tradition that goes back to Moses’s encounter with God in the burning bush. When asked for God's name, God responds, “I am that I am.” This “I am” phrase is now linked with Jesus, which differentiates our Christian faith from Judaism and any other religious traditions. Jesus somehow reveals the “I am.” Then, all the eight “I am” statements can be rephrased as this: I am as God is (ever present and existent), God is the bread of life, God is the light of the world, God is the gate for the sheep, God is the good shepherd, God is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God is the true vine, and finally, God is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My attempt to make sense of the eight “I am” statements seems to succeed logically. It’s merely an example of a transitive law: if A is equal to B and B is equal to C, then A is equal to C. If God is equal to “I am” and “I am” is equal to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then God is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But then there’s another question that begs a serious answer. Why does Jesus’s “I am” statement matter to us, particularly the one we hear this morning? What changes does it bring to our lives? This is then to ask: To where in our lives does this “way” take us? What does this “truth” help us know about life? And what kind of “life” are we signing up for? I cannot think of anything else but we are left with the way that Jesus himself walked, the truth that he taught, and the life he lived and gained. The way is to the cross. The truth is about life that finds its only meaning and purpose in loving God and others as oneself. And the life is born of the resurrection after choosing to love others more than oneself. Therefore, for us to accept Jesus’s self-statement to be true, we simply follow him. The way to the cross through the truth of loving God and others as ourselves leads us to the life of the resurrection. Jesus himself becomes our journey to the Father. Not so much in our religious activities do we meet God but God is rather felt, experienced, and manifested more vividly in our personal and communal journey with Christ. This is one of the reasons why Christians do not despair in the midst of darkness though we weep and mourn. During this unprecedented time when we hear so many tragic stories in our lives, let’s passionately follow the way of Jesus, embody the truth of love, and live out the life of the resurrection.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Believe in God, believe also in me.”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men.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요한 14:1-14)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좀 과하다 싶어요. 신을 찾는 제자들에게 “나 봤으면 아버지(하느님)을 본거여”라고 말을 하시질 않나, “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나 있다”라고 하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다니… 미합중국 도람푸 대통령의 자기애성 발언과 행동만 봐도 피곤한데 예수님까지 이러시면 상당히 당혹스럽죠.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은 저 발언들을 과연 이해했을까요? 못했겠죠. 그러니 자꾸 반복 설명하시는 거죠. 그러다 보니 너무 가셨나 싶기도 해요. 오늘 본문 가지고 다음 두 화두만 곰곰히 생각해 보도록 해요.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 도대체 어찌 이해할까(대체 뭔말이여!), 둘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길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그 진리는 우리로 뭘 깨우칠 수 있게 하고, 어떤 생명을 얻으려고 하나(이 사람 따라가서 내 인생 어찌될란가?). 성 요한이 전한 복음에 예수님께서 “나는(I am)…”이라는 자기소개서식 발언을 여덟 번 정도 하세요. 먼저 6장에서 예수님께서 어두운 밤 물 위를 걸으세요. 그걸 보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다가가, “쫄지마, 나야”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게 I am 문구의 첫 시작이에요. 여기서 아시다시피 “나야”라고 번역된 건 헬라어로 ego eimi, 모세가 떨기꽃에서 하느님을 봤을 때 묘사된 “I am that I am 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를 의미한다고 하죠.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이 I am이 가진 의미가 단순히 자기 소개를 위한 문구가 아니라 신을 지칭한다고 해요.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자기소개식 발언들을 바라본다면 단순히 도람푸식의 자기애성 발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좀 더 나아가야 교조적 이해를 넘어 체험적, 경험적, 심층적 이해로 들어가야 합니다. 교조적 이해란 이런 식이에요: 요한복음의 I am 문구는 하느님을 의미하고 이렇게 I am으로 자신을 이해한 예수님은 하느님이다. 고로 신이신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이시니, 예수님 믿고 천국 고고싱...기승전-예수천국 불신지옥. 참 쉽죠? 반면 I am 문구의 체험적 이해는 달라요. 내 안에서 경험해야 예수님의 말씀이 체험적으로 이해가 되죠. I am을 우리 안에서 만나야 해요. 지금 바로 I am으로 계시는 하느님, 다석 유영모 선생께서는 “없이 계신 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이런 없이 계신 하느님은 밖에서 말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해요. 찾아서 만나고 나면 찾을 일도 없었구나 알게 되고요. 우리는 매일 나를 정의하고 표현하지요. 예를 들어, “나는 아무개, 나 배고파, 나 진보, 나 보수, 나 슬퍼” 등등 내가 누군지 무슨 생각과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를 표현합니다. 영어로 하면 좀 더 쉬워요: I am Jane Doe, I am angry, I am progressive, I am conservative, I am sad, & etc. 나, 즉 I am 뒤에 붙어 나를 표현하는 모든 명사, 형용사, 동사를 없애고 나면 I am 밖에 없겠죠. 아무 생각 없이 존재로서만 계셔보세요. 내 이름, 나이, 국적, 성별, 성정체성, 직업, 생각, 감정 모두 떨어져 나가고 그저 존재하는 순간에 이르면 I am만 드러나겠죠. 이게 없이 계신 하느님 체험이에요. 아무 결핍도 불안도 없이 분주함이 사라진 고요하고 잠잠한 상태, 사리 분별이 멈추고 나와 남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는 단순히 존재하는 상태를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게 관상기도의 목적이죠. 예수님께서 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 만나라고 여덟 번이나 I am을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그렇게 없이 계신 이 I am을 경험해야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는 예수님의 자기애성 발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가르키기 위해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없이 계시는 이를 체험하는 게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I am” leads us to the way, to the truth, and to the life.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이 사라진 상태에만 머물면 산 속으로 가는 수 밖에 없죠. 자기만 좋으라고 혼자 명상하고 기도하는 게 도대체 그리스도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없이 계신 이를 만나는 체험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고 성소입니다. 신을 만났으면 신명나게 나와 남과 세상을 위한 신의 명을 따라 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신명 따라 사는 걸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고 계세요.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밖으로 가는 길, 바로 십자가로 향하는 길이죠. 십자가의 길에 들어섬은 하느님과 남을 사랑하는 게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진리를 몸소 살아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며 살다간 결국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 걸 분명히 알면서, 나를 남처럼 사랑한 이웃에게 손해보고 뒤통수 맞아도, 양심에 따라 불편하게 살면서,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는 거에요. 그렇게 사랑의 진리로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내 이기심은 죽고 없이 계신 하느님과 내가 합일하는 부활의 생명에 다다르겠죠. 즉, 기승전-부활인데, 이 인생살이는 신명 따라 현실 매순간을 깨어 살다가 알고 죽는 거고, 기승전-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교리를 믿고(subscribe 구독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 죽음이 두려워 천국 만들어 놓고 눈 감고 살다가 죽는 겁니다. (어떤 걸 선택하든지 결국 개인의 선택이니까 뭐가 옳으니 그르니 왈가왈부할 건 없어요. 더 중요한 건 내 삶에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선택하고, 그 선택에 관해 책임지고 후회없이 사는 거니까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 사랑의 진리, 부활의 생명은 한번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체험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험해야 해요. 우리 심연 깊숙이 경험한 없이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 몸과 생각, 감정, 의지를 정화시켜 십자가의 길로, 사랑의 진리로, 부활의 생명로 향하는 삶이야 말로 세례 성사와 성체 성사가 가리키는 신비랍니다. 세례 받았으면 십자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거고, 그 길을 사랑의 진리로 나아가다 보면 내 이기적인 부분이 죽겠고, 성체를 받으며 부활의 생명을 체험하고 없이 계신 하느님의 현존이 나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친구들과 있을 때 드러나고 느껴지는 거에요. 이게 그리스도 공동체고요. 이 삶은 절대 쉽지 않는 삶이고 사서 고생하는 인생이에요. 그러니까 누군가 이런 삶이 고생스러워서 포기하더라도 뭐라 그러면 안돼요. 그래도 하늘뜻 여러분은 가끔 포기하다가도 다시 붙잡으시고, 힘들 때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안에 없이 계신 이를 만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로, 진리로, 생명으로 매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빕니다. |
Paul"...life up your love to that cloud [of unknowing]...let God draw your love up to that cloud...through the help of his grace, to forget every other thing." Archives
Januar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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